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은 현대 올림픽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대회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올림픽이었습니다. 당시 세인트루이스는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로, 세계 박람회와 함께 올림픽을 개최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1904년 - 미국, 세인트루이스
미국
1904년 올림픽을 개최한 미국은 당시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었으며,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올림픽 개최를 통해 미국은 국제 무대에서 문화와 스포츠를 통해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미국(미합중국, USA)은 50개의 주와 1개의 특별구로 구성된 연방제 공화국입니다. 하와이를 제외한 모든 주와 수도 워싱턴 D.C.는 북아메리카에 위치하며, 캐나다와 멕시코와 국경을 맞닿고 있습니다. 또한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해외 영토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나라이며, 인구도 세 번째로 많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다문화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이민자가 들어옵니다. 경제적으로는 2019년 명목상 GDP가 21조 4394억 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오랜 세월 미국 본토에 거주했으나, 유럽의 식민지화로 인해 인구가 급감했습니다. 미국은 13개 식민지에서 건국되었으며, 1776년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1787년에 헌법이 채택되었고, 1791년에 권리장전이 비준되어 기본적인 민권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동안 미국은 여러 나라로부터 영토를 획득하고, 텍사스와 하와이를 병합했으며, 태평양과 카리브해에서도 영토를 얻었습니다. 남북 전쟁 후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미국은 급속히 산업화되었습니다.
미국-스페인 전쟁과 세계 대전을 통해 군사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최초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이 되었습니다. 냉전 후에는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아 있으며, 전 세계 군비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본토의 육지 면적은 약 7억 7000만 헥타르입니다. 본토와 떨어진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넓은 주로, 면적이 1억 5000만 헥타르입니다. 하와이주의 면적은 160만 헥타르를 조금 넘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러시아와 캐나다 다음으로 세 번째로 넓은 나라입니다.
미국의 총 면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CIA 월드 팩트북: 9,826,676 km² / 유엔 통계국: 9,629,091 km² / 브리태니커 사전: 9,522,055 km² )
1507년, 독일의 지도학자 마르틴 발트제뮐러는 세계 지도를 만들면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서반구의 땅을 "아메리카"라고 명명했습니다.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처음으로 "미합중국의 만장일치 선언"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1776년 7월 4일에 채택되었습니다.
1777년 11월 15일에 제2차 대륙 회의에서 연합 규약을 채택하면서 "미합중국"이라는 국호가 확립되었습니다.
미국의 표준 명칭은 'United States'이며, 흔히 'the U.S.', 'the USA', 'America'로 불립니다. 일상 회화에서는 'the U.S. of A.'와 'the States'도 사용됩니다. '컬럼비아'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워싱턴 D.C.의 명칭에서도 사용됩니다.
영어권에서 미국인을 '아메리칸'(American)이라고 부르며, 'United States of America' 대신 'America'나 'U.S.'가 흔히 사용됩니다.
대한민국 및 중화권에서 쓰이는 '미국'(美國)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시대 중국인들이 '아메리칸'을 '美利堅'으로 음역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를 줄여 '메이궈'(美國)로 표기하였고, 조선인들은 이를 '미리견' 또는 '미국'으로 읽고 표기했습니다.
일본에서는 '亞米利加'(아미리가)로 표기하고, 이를 줄여 '베이코쿠(米國)'로 표기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현재도 '미국(米國)'을 사용합니다. 한국어에서 '며리계'(彌里界)라는 독자적인 음차 표기도 있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미주리 주에 위치한 세인트루이스는 미국 중서부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당시 세계 박람회와 올림픽을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발전한 세인트루이스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미시시피 강 서쪽 연안에 위치하며, 일리노이 주와 인접해 있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프랑스 모피 상인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미주리 강과 미시시피 강의 합류점에 위치해 일찍이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였습니다.
남북전쟁 직전 드레드 스콧 재판이 열린 곳으로, 인종차별의 역사적 현장 중 하나입니다. 2014년 퍼거슨 소요 사태가 발생한 이후, BLM 운동의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St. Louis)는 미국 미주리주 동쪽 끝에 위치한 독립시이자 미주리주 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미시시피강과 미주리강의 합류점에 위치한 상공업 도시로, 2020년 기준 인구는 약 30만 명입니다. 주요 교육기관으로는 워싱턴 대학교 세인트루이스, 세인트 루이스 대학교, 커버넌트 신학교, 컨콜디아 신학교 등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세인트루이스는 프랑스인 모피 상인들이 세운 도시로, 미시시피 강의 수운 덕분에 도로와 철도가 집중되면서 중서부의 교통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중서부의 곡물, 면화, 목재, 가축의 대집산지이자 담배와 모피 거래의 세계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현재도 거리 이름에는 프랑스어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주요 산업으로는 식품 가공, 제분, 약품 및 철물류 제조 등이 활발합니다.
세인트루이스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어우러진 도시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영국,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계 주민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산업화와 이민 붐으로 많은 독일인과 아일랜드인이 정착했으며, 20세기 초반에는 남유럽과 동유럽에서 온 이민자들도 정착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천천히 성장한 세인트루이스는 1950년대에 인구 성장이 절정에 달했으나, 이후 교외로의 이주로 인해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2010년 미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세인트루이스에는 142,057가구가 있으며, 그중 67,488가구는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구밀도는 1제곱 마일당 5,158명입니다. 인구 구성은 19세 이하가 24%, 20-24세가 9%, 45-64세가 25%, 그리고 65세 이상이 11%입니다. 주민들의 평균 나이는 34세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주로 도시 북부에 거주하고 있으며, 델마대로 북쪽에서는 94%의 주민이 흑인입니다. 아시아계 미국인 중 베트남계는 0.9%, 중국계는 0.6%, 인도계는 0.5%를 차지합니다. 베트남계는 Dutchtown 동네에, 중국계는 Central West End에 주로 거주합니다. 멕시코계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하며, 세인트루이스의 19%의 집은 비어있습니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5세 이상의 아이들 중 95% 이상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2.86%는 스페인어, 0.91%는 보스니아어, 0.74%는 베트남어, 0.50%는 아프리카계 언어, 0.50%는 중국어, 0.45%는 프랑스어를 사용합니다. 종합적으로 8.95%의 5세 이상 아이들이 영어 대신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종목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17개 종목에서 94개의 세부 종목으로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주요 종목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육상,수영, 체조, 레슬링, 권투, 양궁, 펜싱, 역도, 사이클링, 테니스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금메달 상위 국가
미국이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금메달 78개를 포함해 대부분의 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순위 | 국가 | 금메달 수 |
1 | 미국 | 78 |
2 | 독일 | 4 |
3 | 캐나다 | 4 |
4 | 쿠바 | 4 |
5 | 헝가리 | 2 |
6 | 그리스 | 1 |
7 | 오스트레일리아 | 1 |
8 | 오스트리아 | 1 |
9 | 프랑스 | 1 |
10 | 영국 | 1 |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특징
미국의 압도적인 성과: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며, 전체 금메달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당시 미국 선수들이 대부분의 종목에서 우세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 참가국의 제한: 1904년 올림픽은 유럽에서 먼 거리와 비용 문제로 인해 많은 유럽 국가들이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참가국 수가 제한적이었으며, 미국 선수들이 많은 메달을 획득하는 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 비공식 종목: 일부 비공식 종목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는 이후 올림픽 규정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인디언 클럽 스윙과 같은 종목들이 있었습니다.
- 문화적 다양성: 1904년 세계 박람회와 함께 열린 올림픽은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소개하는 장이 되었습니다. 이는 올림픽이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닌, 세계 각국의 문화를 교류하는 중요한 이벤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 기술적 진보: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은 당시 최신 기술을 활용해 경기장을 설계하고 경기를 진행했습니다. 이는 이후 올림픽 개최지들이 기술적 진보를 통해 더 나은 경기 환경을 조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역사적인 순간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여러 역사적인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 만국박람회의 일부: 이 대회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 만국박람회의 일부로 개최되었습니다. 조직위원회는 5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대회를 열었고, 올림픽이라는 것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 많은 선수들은 자신이 올림픽에 참가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 잊을 수 없는 챔피언: 60m, 110m 허들, 200m 허들, 멀리뛰기에서 우승한 미국의 앨빈 크랜즐레인이 이 대회의 스타였습니다.
- 참가국과 선수: 이 대회에는 총 12개국의 선수들이 참가했으며, 그 중 645명의 남성 선수와 6명의 여성 선수, 총 651명의 선수가 경기에 참가했습니다.
- 경기 종목: 이 대회에서는 총 16개의 종목, 91개의 세부 종목에서 경기가 개최되었습니다.
- 이름 없는 챔피언: 마라톤 우승은 미국의 토마스 힉스가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 우승은 1위로 먼저 들어왔던 같은 미국인, 프레드 로즈가 40km 구간 중 상당부분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 뒤 결승선 직전에 내려서 달렸다는 것이 밝혀져 실격 당한 뒤 정해졌습니다.
- 다이빙 멀리뛰기: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다이빙 멀리뛰기는 정식 종목이었습니다. 최초의 다이빙 멀리뛰기 금메달은 62피트 6인치 (19.05m)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한 미국의 윌리엄 폴 디키가 가져갔고, 참가한 나머지 네 명의 선수들도 모두 미국 선수들이었습니다.
- 장애를 극복한 선수: 미국의 체조선수 조지 에이저는 왼쪽 다리가 나무로 된 의족이었지만 에이저는 6개의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선수는 미국의 조지 에이저로, 왼쪽 다리가 나무로 된 의족이었지만 에이저는 6개의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한 미국이 전체 21개 메달 중 13개를 가져갔습니다.
- 여성 참가: 여성 참가자가 극히 적었지만, 점차 여성 스포츠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정보들은 웹 검색을 통해 얻은 내용입니다
결론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은 미국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중요한 대회로,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한된 참가국 수와 미국 선수들의 압도적인 성과는 이 대회를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세계 박람회와의 동시 개최는 문화적 다양성과 기술적 진보를 함께 보여주며, 올림픽이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선 국제적 축제임을 증명했습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은 이후 올림픽 대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계 올림픽 개최국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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