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계올림픽

1940년 하계올림픽 중일전쟁으로 취소된 대회의 역사와 그 여파

by 더지이 2024. 6. 29.

1940년 하계 올림픽은 원래 일본 도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중일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결국 취소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동양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전쟁의 여파로 개최되지 못한 비운의 대회로 남았습니다.

1940년 일본, 도쿄 (취소)

 

 

중일전쟁으로 취소

 

1940년 하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된 제12회 하계 올림픽입니다.

 

원래 일본 제국의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중일 전쟁으로 인해 개최권이 핀란드 헬싱키로 넘어갔지만, 결국 전쟁으로 인해 열리지 못했습니다. 이후 헬싱키는 1952년, 도쿄는 1964년과 2020년에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중일 전쟁(中日戰爭)은 1937년 7월 7일 일본 제국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되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 사이의 대규모 전쟁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이 전쟁을 중국 항일 전쟁(중국어 간체자: 中国抗日战争, 정체자: 中國抗日戰爭, 병음: Zhōngguó Kàngrì Zhànzhēng)이라고 부르며, 일본에서는 일중 전쟁(일본어: 日中戦争) 또는 지나 사변(일본어: 支那事変)이라고 합니다.

서구권에서는 제2차 중일 전쟁(영어: Second Sino-Japanese War)이라고 칭합니다. 이 전쟁은 20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쟁이었습니다.

 

1931년 이후로 두 나라 사이에는 간헐적인 교전이 있었으나, 본격적인 전면전은 1937년 이후로 시작되었으며,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한 1945년 9월 2일에 종료되었습니다.

전쟁은 수십 년간 지속된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의 결과로, 일본은 원료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을 정치·군사적으로 지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민족주의와 민족자결주의는 전쟁을 중국의 승리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37년 이전에는 양측이 다양한 이유로 소규모 국지적 전투를 벌였으며, 1931년 9월 18일 일본이 일으킨 만주사변과 1937년의 루거우차오 사건(중국어: 盧溝橋事件, 노구교 사건)을 계기로 두 나라 간의 전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1937년부터 1941년까지는 중국이 단독으로 일본에 맞섰고, 진주만 공격 이후 중일 전쟁은 더 큰 규모의 제2차 세계 대전에 포함되었습니다. 이후 일본군의 전력은 급속히 쇠퇴하였고, 1944년 즈음 일본은 '대륙타통작전'을 개시하며 반격을 시도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연합군에게 무조건 투항 및 전면 항복을 선언하였고, 같은 해 9월 2일 연합국에 대한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을 끝으로 중일 전쟁도 종결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는 2,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개최지 선정 과정

 

1940년 하계 올림픽의 유치 운동은 1932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도쿄, 바르셀로나, 로마, 헬싱키가 후보로 나섰고, 일본은 만주사변으로 국제적인 비판 여론에 직면한 상황에서 올림픽 유치를 국제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1936년 IOC 총회에서 도쿄가 개최지로 선정되었고, 이는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동양에서 열리는 대회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도쿄 올림픽 준비

 

도쿄에서는 메이지 신궁 가이덴 경기장을 주경기장으로 선정하고,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으로 탈바꿈할 계획이었으나 내무성 신궁국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에 신경기장 건립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올림픽 선수촌은 기누타 공원이나 도도로키 계곡 자리에 지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조직위원회는 대회 일정을 세우고, 관련 지침서를 4개 언어로 발행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개최권 반납과 헬싱키로의 이동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내에서는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1938년 극동 선수권 대회도 취소되었습니다. 결국 1938년 7월 15일 일본 정부는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IOC는 헬싱키에게 개최권을 부여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대회는 열리지 못했습니다.

 

전쟁 속의 올림픽

 

올림픽이 취소된 후, 헬싱키에서는 핀란드-스웨덴 국제 육상 대회가 최대의 국제 육상 경기대회로 열렸습니다. 1940년 일본에서는 황기 2600년을 기념하여 동아경기대회가 도쿄에서 열렸습니다. 또한 나치 독일의 포로 수용소에서는 전쟁포로들만의 특별한 올림픽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올림픽 40》은 당시 수용소에서 벌어진 특별한 올림픽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전쟁 속에 사라진 꿈

1940년 하계 올림픽은 전쟁으로 인해 열리지 못했지만, 이후 헬싱키와 도쿄는 각각 1952년과 1964년에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며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전쟁과 평화 속에서 스포츠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1940년 하계 올림픽의 역사와 그 배경, 그리고 전쟁 속에서의 특별한 올림픽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쟁과 평화 속에서 스포츠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당시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결론

1940년 하계 올림픽은 전쟁의 여파로 인해 도쿄와 헬싱키에서 모두 개최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헬싱키는 1952년, 도쿄는 1964년과 2020년에 올림픽을 개최하며 비로소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이 대회의 취소는 올림픽 역사에서 전쟁의 영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녹색 버튼 파란색 버튼 빨간색 버튼 노란색 버튼